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컴퍼스자리

by starlight00 2026. 9. 14.
반응형

1756년 라카유가 만든 근대 별자리 컴퍼스자리. 신화 없이 제도용 컴퍼스를 하늘에 새긴 이유, roAp별 사이미, 세이퍼트 은하, 후한서가 기록한 서기 185년 손님별, 한국에서 안 보이는 이유까지 정리했다.

컴퍼스자리에는 신화가 없다. 제우스도, 괴물도, 별이 된 연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별자리는 18세기의 한 프랑스 천문학자가 자신의 책상 위 제도 도구를 그대로 밤하늘에 옮겨놓은 것이다. 왜 하필 컴퍼스였을까, 그리고 이 별자리에는 정말 아무 이야기도 없을까.

목차

  • 컴퍼스자리에는 왜 신화가 없을까
  •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 희망봉에서 하늘을 재다
  • 컴퍼스 옆의 수준기와 자 - 라카유의 제도구 세트
  • 사이미부터 제타까지, 컴퍼스자리를 이루는 별들
  • 알파 컴퍼스자리 - 6.8분마다 떠는 별
  • 세이퍼트 은하와 중성자별, 컴퍼스자리의 딥스카이
  • 서기 185년, 후한서가 기록한 손님별
  • 한국에서는 왜 컴퍼스자리를 볼 수 없을까
  •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FAQ
  • 참고자료

컴퍼스자리에는 왜 신화가 없을까

프톨레마이오스가 2세기에 정리한 48개 별자리에는 제우스도 헤라클레스도 있었지만 컴퍼스는 없었다. 컴퍼스자리는 고대 그리스인이 하늘을 보지 못했던 지역, 즉 남반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고대 지중해 세계의 신화가 애초에 닿을 수 없었던 별자리다.

이 별자리를 하늘에 그려 넣은 사람은 18세기의 천문학자였다. 그는 신화 대신 자신이 쓰던 제도 도구를 골랐고, 그 선택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 희망봉에서 하늘을 재다

프랑스 천문학자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는 1750년 남아프리카 희망봉에 작은 관측소를 세웠다. 1751년 8월부터 1752년 7월까지 약 1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약 1만 개에 이르는 남쪽 하늘의 별을 관측하고 위치를 기록했다.

당시 유럽 천문학은 계몽주의의 한가운데 있었다. 라카유는 별자리를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미경, 망원경, 시계, 화로, 조각칼 같은 당대의 과학·기술 도구로 채우기로 했다. 컴퍼스자리는 그렇게 태어난 14개 별자리 중 하나다.

라카유는 1756년 프랑스 왕립과학원을 통해 남쪽 하늘의 예비 성도를 발표하면서 이 별자리에 프랑스어로 "르 콩파(le Compas)"라는 이름을 붙였다. 본문에서는 이를 "기하학자의 컴퍼스(le Compas du Géomètre)"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라틴어 이름 Circinus로 바뀐 것은 1763년, 라카유가 사후에 출간된 개정 성도에서 별자리 이름을 라틴어로 통일하면서다. Circinus라는 단어 자체는 "원"을 뜻하는 라틴어 circus에서 나온 말로, 원을 그리는 제도용 컴퍼스(디바이더)를 가리킨다. 항해용 나침반을 뜻하는 나침반자리(Pyxis)와는 어원도 도구도 다르다.

컴퍼스 옆의 수준기와 자 - 라카유의 제도구 세트

그런데 여기서 짚어볼 지점이 있다. 컴퍼스자리는 혼자 있지 않다.

라카유의 원래 성도에서 컴퍼스자리 바로 옆에는 남쪽삼각형자리(Triangulum Australe)와 직각자자리(Norma)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라카유는 이미 존재하던 남쪽삼각형자리를 측량 기사가 수평을 잴 때 쓰는 수준기로 새롭게 해석했고, 직각자자리는 자와 삼각자로, 그 사이의 빈틈에는 컴퍼스를 끼워 넣었다. 세 별자리가 나란히 제도사의 도구 세트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다.

컴퍼스자리가 들어갈 자리는 사실상 여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라카유는 켄타우루스자리의 앞발과 남쪽삼각형자리 사이의 좁은 틈에, 컴퍼스가 접힌 모습으로 웅크린 형태를 그려 넣었다. 실제로 이 별자리는 88개 별자리 중 네 번째로 작다 — 전체 면적은 93제곱도로, 가장 큰 바다뱀자리(1,303제곱도)의 1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사이미부터 제타까지, 컴퍼스자리를 이루는 별들

별자리 신화가 없다고 해서 별 하나 없이 텅 빈 것은 아니다. 컴퍼스자리를 실제로 찾으려면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몇 개의 별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밝은 별은 알파 컴퍼스자리로, 겉보기 등급 3.19의 백색 항성이다. 201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이 별에 고유명 사미(Xami)를 공식 부여했다. 지구에서 약 54광년 떨어져 있으며, 등급 8.5의 K형 왜성과 5.7초각 떨어진 쌍성을 이룬다.

두 번째로 밝은 베타 컴퍼스자리(등급 4.07)는 A형 주계열성으로 약 91광년 거리에 있다. 감마 컴퍼스자리는 등급 4.51의 분광쌍성으로, 뜨거운 B형 별과 그보다 어두운 F형 별이 약 258년 주기로 서로를 돈다. 이 밖에 세타 컴퍼스자리와 제타 컴퍼스자리 같은 어두운 변광성들도 별자리의 윤곽을 이루는 데 함께 쓰인다. 전체적으로 별자리는 뒤집힌 대문자 L에 가까운, 좁고 비스듬한 삼각형 모양이다.

알파 컴퍼스자리 - 6.8분마다 떠는 별

그렇다면 이 중 가장 특별한 별은 무엇일까. 답은 가장 밝은 별인 사미(알파 컴퍼스자리) 안에 있다.

사미는 급속진동 Ap형 별(roAp star)로 분류된다. 자기장이 유난히 강한 화학적 특이성 A형 별의 표면이 극지방을 중심으로 아주 빠르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는 진동을 반복하는 부류다. 1981~1982년 커츠(Kurtz)와 크로퍼(Cropper)의 관측을 통해 이 부류의 별 가운데 처음 발견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진동 주기는 약 6.8분, 밝기 변화 폭은 존슨 B 필터 기준 수 밀리등급에 불과할 만큼 미세하지만, 지상 관측과 이후 WIRE 위성의 84일간 고정밀 측광을 통해 최소 4개 이상의 저진폭 진동 모드가 함께 확인됐다. roAp별 중에서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사례로, 이 부류 별의 표면 자기장과 진동 구조를 연구하는 데 자주 쓰인다.

세이퍼트 은하와 중성자별, 컴퍼스자리의 딥스카이

별 이야기만으로 끝내기엔 아쉽다. 이 좁은 별자리 안에는 우리은하 원반 너머의 세계도 담겨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컴퍼스자리 은하(ESO 97-G13)다. 1975~1977년 사이 발견된 이 막대나선은하는 약 1,3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세이퍼트은하로, 활동성 은하핵 주변에서 이온화된 가스가 고리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구조가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으로 확인됐다. 국부은하군을 둘러싼 대형 은하 12개, 이른바 "거인들의 회의(Council of Giants)"에 포함될 만큼 가까운 활동은하 중 하나로 꼽힌다.

행성상성운 NGC 5315는 알파 컴퍼스자리에서 서남서쪽으로 5.2도 떨어진 곳에 있다. 등급 9.8의 이 성운은 1883년 영국 천문학자 랄프 코플런드가 발견했으며, 중심에는 등급 14.2의 백색왜성이 남아 있다. 또 컴퍼스자리와 이웃한 이리자리 경계에는 산개성단 NGC 5823(콜드웰 88)이 있는데, 스코틀랜드 천문학자 제임스 던롭이 1826년 발견했고 나이는 약 8억 년, 거리는 약 3,500광년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중성자별과 주계열성이 짝을 이룬 X선 쌍성 컴퍼스자리 X-1, 펄서 PSR B1509-58도 이 좁은 하늘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서기 185년, 후한서가 기록한 손님별

여기서 통념과 다른 지점이 하나 나온다. 컴퍼스자리에 신화는 없지만, 이 별자리 방향에는 놀랍게도 아주 오래된 동아시아의 실제 기록이 남아 있다.

서기 185년 12월, 켄타우루스자리 알파별(남문·南門) 근처, 오늘날의 컴퍼스자리와 켄타우루스자리 경계 부근에 갑자기 밝은 별이 나타났다. 중국 후한서(後漢書) 천문지는 이를 "손님별(客星)"이라 기록하며 "크기가 대나무 자리 절반만 했고 여러 빛깔을 띠다가 점차 옅어졌다"고 묘사했다. 이 별은 약 8개월간 맨눈으로 보이다가 사라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 인류가 문헌으로 남긴 가장 오래된 초신성 관측 기록으로 꼽힌다.

이 사건은 SN 185로 명명됐고, 후대 연구를 거쳐 약 8,000광년 떨어진 초신성 잔해 RCW 86과 연결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3년 미국 국립광학적외선천문연구소(NOIRLab)가 다크에너지카메라(DECam)로 촬영한 RCW 86의 전체 이미지는 폭발 후 1,800년이 넘도록 계속 팽창해 온 가스 껍질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냈다. 다만 이 자리가 동아시아 별자리 체계인 28수(二十八宿)에서 하나의 독립된 성관으로 대응되지는 않는다. 컴퍼스자리 일대는 고대 중국에서도 지평선 가까이에서만 잠깐 보이던 먼 남쪽 하늘이라, 별자리 하나를 통째로 배정할 만큼 자세히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왜 컴퍼스자리를 볼 수 없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해도, 직접 밤하늘에서 찾아보려는 독자에게는 아쉬운 소식이 있다.

컴퍼스자리의 별들은 적위 약 -55도에서 -70도 사이에 몰려 있다. 위도 33~38도인 한국에서 남쪽 지평선 위로 뜰 수 있는 별의 한계는 적위 약 -52도 안팎이다. 즉 컴퍼스자리는 그 한계보다 훨씬 남쪽에 있어, 한국의 어느 지역에서도 지평선 위로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서울은 물론 위도가 가장 낮은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별자리를 맨눈으로 보려면 적어도 남반구나 적도 부근, 북위 30도 이남까지 내려가야 한다. 남반구에서는 연중 지지 않는 주극성으로 관측되며, 남반구 가을철인 6월 초 자정 무렵 남중한다. 가장 밝은 사미(알파 컴퍼스자리)조차 등급 3.19에 불과해 도심의 빛공해 속에서는 남반구에서도 찾기 쉽지 않은 편이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컴퍼스자리는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가 1751~1752년 희망봉 관측을 바탕으로 1756년 발표하고, 1763년 라틴어 이름 Circinus로 확정한 근대 별자리다. 고전 신화는 없다.
  • 남쪽삼각형자리(수준기)·직각자자리(자)와 함께 라카유의 "제도 도구 세트"를 이룬다.
  • 가장 밝은 별은 등급 3.19의 사미(알파 컴퍼스자리)로, roAp형 변광성이며 약 6.8분 주기로 진동한다.
  • 세이퍼트은하인 컴퍼스자리 은하(약 1,300만 광년), 행성상성운 NGC 5315, 산개성단 NGC 5823 등이 있다.
  • 서기 185년 후한서가 기록한 손님별(SN 185)이 이 별자리 인근에서 관측됐다.
  • 적위가 -55도~-70도로 매우 남쪽에 있어 한국에서는 전혀 관측할 수 없다.

FAQ

Q. 컴퍼스자리와 나침반자리(Pyxis)는 같은 별자리인가요?
아니다. 컴퍼스자리(Circinus)는 원을 그리는 제도용 디바이더를 가리키고, 나침반자리(Pyxis)는 방향을 가리키는 항해용 나침반을 뜻한다. 이름의 유래와 라틴어 어원도 서로 다르며, 둘 다 라카유가 만든 별자리라는 공통점만 있다.

Q. 컴퍼스자리에 붙은 별 이름 '사미'는 무슨 뜻인가요?
사미(Xami)는 2016년 IAU가 알파 컴퍼스자리에 공식 부여한 고유명이다. 남아프리카 코이산족의 언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카유가 남아프리카에서 이 별자리를 관측했다는 역사적 맥락과 연결된다.

Q. 컴퍼스자리처럼 신화가 없는 별자리는 또 있나요?
있다. 라카유가 만든 14개 별자리(현미경자리, 망원경자리, 시계자리, 팔분의자리 등)는 대부분 신화 없이 과학·기술 도구를 딴 이름이다. 대항해시대에 케이세르와 더하우트만이 명명한 남쪽 하늘의 동물 별자리들도 마찬가지로 고전 신화와 무관하다.

참고자료

  • 국제천문연맹(IAU), 88개 별자리 및 항성 고유명 목록(Circinus, Alpha Circini "Xami")
  • Ian Ridpath, Star Tales, "Circinus" 항목
  • NOIRLab, "Supernova From the Year 185: A Rare View of the Entirety of This Supernova Remnant" (RCW 86 / SN 185 관련 보도자료, 2023)
  • 후한서(後漢書) 천문지, 서기 185년 손님별(客星) 기록
  • SIMBAD 천문 데이터베이스, Alpha/Beta/Gamma/Theta/Zeta Circini 관측 자료
  • NGC/IC 프로젝트 및 위키백과 영문판, NGC 5315·NGC 5823·컴퍼스자리 은하(ESO 97-G13) 항목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