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외계행성은 왜 '페가수스자리 51 b'라 불릴까. 별자리가 외계행성의 주소가 되는 원리, 케플러가 4년간 지켜본 백조자리 하늘, 한국이 이름 붙인 작은곰자리의 백두와 한라, 한국 밤하늘에서 행성을 품은 별을 직접 찾는 법까지 정리했다.

1995년, 인류가 처음으로 태양과 닮은 별 곁에서 행성을 찾아냈을 때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그 행성은 잠시 벨레로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길들여 탄 그리스 영웅의 이름이다. 행성이 발견된 별이 바로 페가수스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최첨단 관측으로 찾은 천체가 수천 년 전 신화의 말 이름을 달고 등장한 셈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한 낭만이 아니다. 2026년 10월 기준 NASA 외계행성 아카이브에 확인된 외계행성만 6,375개인데,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별자리를 '주소'로 삼아 불린다. 고대의 별자리와 현대의 외계행성은 어떻게 이렇게 단단히 묶이게 되었을까.
목차
- 외계행성 이름 속에 숨은 별자리 주소
- 페가수스자리 51번 별 - 인류가 처음 찾은 '태양 닮은 별의 행성'
-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사이 - 케플러가 4년 동안 바라본 하늘
- 작은곰자리의 백두와 한라
- 지금 한국 밤하늘에서 행성을 품은 별 찾기
-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FAQ
- 참고자료
외계행성 이름 속에 숨은 별자리 주소
외계행성 이름은 언뜻 암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규칙을 알고 나면 이름 하나에 '어느 별자리의, 몇 번째 별 곁을 도는, 몇 번째로 발견된 행성'이라는 정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출발점은 1930년 국제천문연맹(IAU)이 확정한 88개 별자리 경계다. 이때부터 별자리는 신화 속 그림이 아니라 하늘 전체를 빈틈없이 나눈 행정구역이 되었다. 어떤 별이든 반드시 88개 구역 중 하나에 속하고, 그 별을 도는 행성도 자연스럽게 같은 주소를 갖게 된다.
'51 Pegasi b'를 풀어보면 이렇다.
- 51 - 18세기 영국 왕실 천문학자 존 플램스티드가 붙인 번호. 한 별자리 안의 별을 서쪽에서 동쪽으로(적경 순서대로) 나열한 일련번호다.
- Pegasi - 라틴어 Pegasus의 소유격. '페가수스자리의'라는 뜻이다.
- b - 그 별 곁에서 처음 확인된 행성. 중심별 자신을 a로 보고 행성은 b부터 발견 순서대로 c, d를 붙인다.
모든 외계행성이 이런 이름을 갖는 것은 아니다. 'Kepler-186f'나 'TRAPPIST-1e'처럼 발견한 망원경·탐사 프로젝트 이름을 앞세운 경우도 많다. 그래도 논문과 데이터베이스는 이들 역시 어느 별자리 방향에 있는지 함께 기록한다. '행성'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 플라네테스(planētēs), 즉 '떠도는 자'에서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떠도는 천체를 고정된 별자리 위에 붙잡아 두는 오래된 방식이 지금도 쓰이는 셈이다.
페가수스자리 51번 별 - 인류가 처음 찾은 '태양 닮은 별의 행성'
그렇다면 첫 발견의 무대가 왜 하필 페가수스자리였을까. 답은 의외로 담담하다. 별자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방향에 있던 별 하나가 관측 목록에 올라 있었을 뿐이다.
1995년 스위스 제네바 천문대의 미셸 마요르와 대학원생 디디에 쿠엘로는 프랑스 오트프로방스 천문대의 분광기로 51 Pegasi의 빛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별빛의 스펙트럼이 아주 미세하게 파란 쪽과 붉은 쪽을 오가는 것을 발견했다. 보이지 않는 동반자가 별을 앞뒤로 잡아당기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것이 오늘날 시선속도법이라 부르는 탐지 방식이다.

결과는 당시 행성 이론을 뒤흔들었다. 이 행성은 질량이 목성의 절반가량(최소 0.47배)인 거대 가스 행성인데, 중심별을 단 4.23일에 한 바퀴 돈다. 별과의 거리는 약 0.05AU로, 태양과 수성 사이 거리의 8분의 1 정도다. 목성급 행성은 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만 있다는 상식이 깨지면서 '뜨거운 목성'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생겼다. 두 사람은 이 발견으로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다만 '최초의 외계행성'이라는 타이틀에는 단서가 하나 붙는다. 그보다 3년 앞선 1992년, 처녀자리 방향 약 2,300광년 거리의 펄서(지금 이름은 리치) 주위에서 행성이 먼저 확인되었다. 펄서는 초신성 폭발 뒤 남은 별의 잔해라 '태양 같은 별'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51 Pegasi b에는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 곁에서 발견된 최초의 행성'이라는 정확한 수식어가 붙는다.
벨레로폰이라는 별명은 공식 이름이 되지 못했다. 2015년 IAU의 이름 짓기 캠페인에서 별에는 스위스의 옛 켈트 부족을 가리키는 헬베티오스(Helvetios), 행성에는 라틴어로 '절반'을 뜻하는 **디미디움(Dimidium)**이 선정되었다. 목성 질량의 절반쯤이라는 특징을 그대로 이름에 담은 것이다.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사이 - 케플러가 4년 동안 바라본 하늘
첫 발견이 '우연히 그 방향에 있던 별'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정반대였다. 이번에는 천문학자들이 별자리 하나를 골라 그곳만 집요하게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2009년 발사된 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사이, 약 100제곱도 넓이의 하늘을 계속 응시했다. 북두칠성의 국자 부분 두 개를 나란히 놓은 정도의 면적이다. 이 시야 안 수백만 개의 별 가운데 약 15만 개를 골라 밝기를 쉬지 않고 기록했다. 행성이 별 앞을 지나갈 때 생기는 아주 작은 밝기 감소, 즉 **통과(트랜싯)**를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왜 하필 이 구역이었을까.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이 방향은 황도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 내내 돌아도 태양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같은 별을 몇 년 동안 끊김 없이 지켜봐야 하는 관측에는 결정적인 조건이다. 둘째, 우리 은하의 원반 방향이라 별이 빽빽하게 모여 있다. 한 번에 최대한 많은 별을 감시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그 결과 백조자리는 '외계행성이 가장 많이 발견된 별자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지구 크기 행성 중 처음으로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에서 확인된 Kepler-186f, 지구의 '사촌'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Kepler-452b가 모두 백조자리 방향에 있다. 케플러는 이 한 구역과 이후의 확장 임무를 통해 2,7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확인했다. 신화 속에서 제우스가 변신한 백조로 그려지던 별자리가, 현대에는 행성 통계의 핵심 표본 구역이 된 것이다.
작은곰자리의 백두와 한라
외계행성과 별자리의 관계가 한국과 직접 이어지는 지점도 있다. 북극성이 있는 작은곰자리에, 한국 망원경이 찾고 한국인이 이름을 붙인 외계행성계가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이병철 박사 연구팀은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으로 북극 근처 하늘의 별들을 꾸준히 관측했고, 2015년 별 8 UMi 곁에서 행성 8 UMi b를 발견했다. 51 Pegasi b와 같은 시선속도법이다. 별은 태양보다 약 1.8배 무거운 거성이고, 행성은 목성의 약 1.5배 질량을 가진 거대 가스 행성으로 별을 93.4일에 한 바퀴 돈다. 이 행성계는 지구에서 약 520광년 떨어져 있다.

2019년 IAU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나라마다 외계행성계 하나씩을 배정해 이름을 공모했다. 한국에는 이 8 UMi 행성계가 배정되었고, 국내에서 325건의 이름이 제안된 끝에 별에는 백두(Baekdu), 행성에는 **한라(Halla)**가 최종 선정되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다. 2019년 12월 17일 발표 이후 이 두 이름은 과학적 명칭과 함께 세계 공용으로 쓰인다.
흥미로운 점은 행성 한라가 처한 운명이다. 중심별 백두는 이미 거성 단계에 접어든 별이라, 앞으로 더 크게 부풀어 오르면 지금 궤도의 행성을 삼킬 것으로 예상된다. 거성 바로 곁에서 행성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는 아직도 연구가 이어지는 주제다.
지금 한국 밤하늘에서 행성을 품은 별 찾기
외계행성 자체는 어떤 망원경으로도 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행성을 품은 '중심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한국(북위 33~38도)에서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대상을 난이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헬베티오스(51 Pegasi) - 가을 저녁, 맨눈 도전 가능 겉보기 등급 5.49등급으로, 빛 공해가 적은 시골 하늘이라면 맨눈으로도 보이는 밝기다. 10월 밤 9시 전후 남쪽 하늘 높이 떠오르는 '페가수스 대사각형'을 먼저 찾는다. 사각형의 서쪽 변을 이루는 두 별 마르카브와 시아트를 잇는 선 바로 바깥쪽에 희미하게 놓여 있다. 도시에서는 쌍안경이 있어야 확인하기 쉽다. 약 50광년 거리라, 지금 보는 빛은 대략 반세기 전에 출발한 빛이다.
백두(8 UMi) - 사계절 내내, 쌍안경 필요 겉보기 등급 6.83등급으로 맨눈 관측 한계 언저리에 있어, 실제로는 쌍안경을 쓰는 편이 현실적이다. 적위가 약 +75도로 북극성 가까이 있어 한국에서는 1년 내내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주극성이다. 북극성과 작은곰자리 국자 끝의 코카브 사이 영역을 쌍안경으로 훑으며 찾는다. 밝은 별이 적은 구역이라 별 지도 앱으로 위치를 미리 확인해두면 훨씬 수월하다.

케플러 관측 구역 - 여름 자정, 맨눈으로 '방향'만 케플러가 바라본 구역 속 개별 행성 모항성은 대부분 매우 어두워 대형 망원경이 필요하다. 대신 구역 자체는 맨눈으로 짚을 수 있다. 여름철 자정 무렵 머리 위에 떠 있는 백조자리의 데네브와 거문고자리의 베가 사이, 은하수가 흐르는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 높이 같은 구역이 보인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유명 행성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행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b(약 4.2광년)는 센타우루스자리의 남쪽 깊숙한 곳에 있어 한국에서는 지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일곱 개 행성으로 유명한 TRAPPIST-1은 물병자리 방향에 있지만 너무 어두워 일반 장비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1930년 IAU가 88개 별자리 경계를 확정한 뒤, 별자리는 외계행성의 '하늘 주소'로 쓰인다.
- 51 Pegasi b = 페가수스자리, 플램스티드 번호 51번 별, 첫 번째 행성(b).
- 1995년 마요르와 쿠엘로가 태양 같은 별 곁의 첫 외계행성을 발견했고,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케플러 망원경은 백조자리·거문고자리 사이 약 100제곱도를 4년간 지켜보며 대량 발견을 이끌었다.
- 작은곰자리의 8 UMi 행성계는 보현산천문대가 발견했고, 2019년 '백두'와 '한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 2026년 10월 기준 확인된 외계행성은 6,375개다.
FAQ
Q. 외계행성 이름의 a는 어디로 갔나요? 행성 이름은 b부터 시작한다. 소문자 a는 관례적으로 중심별 자신을 가리키는 자리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같은 별에서 행성이 더 발견되면 발견 순서대로 c, d, e를 붙이며, 별에서의 거리 순서와는 관계가 없다.
Q. 별자리 안에 있는 행성은 서로 가까운 이웃인가요? 그렇지 않다. 같은 별자리라도 51 Pegasi는 약 50광년, 케플러가 찾은 백조자리 행성들은 수백~수천 광년 거리에 있다. 별자리는 지구에서 본 '방향'일 뿐이라, 같은 별자리의 행성계끼리 실제 물리적 관계는 없다.
Q. 외계행성에 누구나 이름을 붙일 수 있나요? 공식 이름은 IAU가 승인해야 한다. IAU는 2015년, 2019년, 2022년에 NameExoWorlds라는 공개 캠페인을 열어 일반인의 제안을 받았다. 백두와 한라도 이 과정을 거친 공식 이름이다. 별 이름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민간 서비스의 이름은 IAU가 인정하지 않는다.
Q. 망원경으로 외계행성 자체를 볼 수는 없나요? 아마추어 장비로는 불가능하다. 행성은 중심별보다 수억~수십억 배 어둡고 별에 바짝 붙어 있어 별빛에 묻힌다. 다만 뜨거운 목성처럼 큰 행성이 별 앞을 지나는 순간의 1% 안팎 밝기 감소는 정밀 측광 장비를 갖춘 아마추어 관측자가 실제로 기록하기도 한다.
참고자료
- NASA Exoplanet Science Institute, 「NASA Exoplanet Archive」 확인 행성 수 집계(2026년 10월 1일 기준)
- Michel Mayor & Didier Queloz, "A Jupiter-mass companion to a solar-type star", Nature 378 (1995)
- 한국천문연구원 보도자료, 「한국이 발견한 외계행성계에 '백두·한라' 이름 선정 - 국제천문연맹(IAU), 외계행성 이름 짓기 캠페인 결과 발표」(2019. 12. 17)
-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NameExoWorlds 캠페인 결과 발표(2015, 2019)
- NASA, 「Kepler's First Light」 케플러 우주망원경 관측 시야 자료
-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The Constellations - 88개 별자리와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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