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ROLOGUE] 별의 시작

별자리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by starlight00 2026. 8. 9.
반응형

메소포타미아 점토판부터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 라카유가 채운 남쪽 하늘, IAU가 확정한 현대 88개까지 별자리가 만들어진 실제 과정을 문헌과 기록으로 짚어본다.

어두운 전시장 받침 위에 놓인 점토판, 쐐기문자 줄 사이사이에 별 모양 기호가 새겨져 있다
어두운 전시장 받침 위에 놓인 점토판, 쐐기문자 줄 사이사이에 별 모양 기호가 새겨져 있다

 

오리온자리를 처음 그린 사람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우리가 쓰는 별자리 체계에는 실제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별자리는 한 명의 발명가가 어느 날 하늘에 선을 그은 결과물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서로 다른 문명이 관찰하고, 베끼고, 고치고, 마지막에는 국제기구가 경계선까지 확정한 누적의 산물이다. 그 과정을 실제 문헌 순서대로 따라가 보면, "누가 만들었나"라는 질문의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목차

  • 지금 우리가 아는 별자리, 정말 한 사람이 만들었을까
  • 가장 오래된 별자리 기록 —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 그리스로 전해진 하늘 — 에우독소스와 아라토스
  •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 별자리
  • 유럽 항해가들이 채운 남쪽 하늘
  • 88개로 확정되기까지 — IAU와 경계선
  •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FAQ
  • 참고자료

지금 우리가 아는 별자리, 정말 한 사람이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별자리를 만든 최초의 인물을 콕 집어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별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여러 문명에서 독립적으로, 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천문연맹(IAU)이 공인하는 별자리는 총 88개다. 이 숫자는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라 최소 세 단계의 서로 다른 역사적 층이 겹쳐 만들어졌다. 가장 아래층은 기원전 2천년기 메소포타미아의 관측 기록이고, 중간층은 그리스·로마를 거치며 정리된 48개 체계이며, 가장 위층은 16~18세기 유럽 항해가들이 남반구를 관측하며 추가한 별자리와 20세기 IAU의 경계 확정 작업이다. 이 세 층을 하나씩 뜯어보면 각 시대에 실제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장 오래된 별자리 기록 —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그 첫 번째 층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체계적 별자리 목록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점토판 모음인 MUL.APIN이다. 이 문서는 대략 기원전 1000년경에 지금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학계는 보지만, 그 안에 담긴 관측 자료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기원전 2천년기 전반의 관측 전통을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MUL.APIN은 하늘을 세 개의 길로 나눈다. 엔릴의 길, 아누의 길, 에아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구역마다 별과 별자리를 배정했고, 별이 뜨고 지는 시기를 기준으로 달력과 농경 일정을 계산하는 데 썼다. 이 점토판에는 오늘날의 오리온자리에 해당하는 "SIPA.ZI.AN.NA"(진정한 목자), 황소자리에 해당하는 "GU4.AN.NA"(하늘의 황소) 같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 이름들 중 상당수가 그리스로 건너가 지금 별자리 신화의 뼈대가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업대 위 회색 펠트에 놓인 갈색 점토판, 격자 칸마다 쐐기문자가 빼곡해 메소포타미아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작업대 위 회색 펠트에 놓인 갈색 점토판, 격자 칸마다 쐐기문자가 빼곡해 메소포타미아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가 순수한 신화적 상상이 아니라 실용적 시간 측정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별의 위치는 파종 시기, 홍수 시기, 왕실 의례 시기를 알려주는 달력이었고, 그 실용성이 별자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그리스로 전해진 하늘 — 에우독소스와 아라토스

그렇다면 이 메소포타미아의 하늘은 어떻게 서양 별자리의 뼈대가 됐을까. 그 다리 역할을 한 인물이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에우독소스(Eudoxus of Cnidus)**다. 에우독소스의 원저작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정리한 별자리 목록은 이후 시인 아라토스의 서사시 《파이노메나(Phaenomena)》(기원전 약 270년경)를 통해 지금까지 전해진다.

아라토스의 《파이노메나》는 순수한 관측 기록이 아니라 시(詩) 형태의 천문 안내서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별자리 하나하나에 신화를 붙이고 그 위치와 계절적 의미를 운율에 실어 설명했는데, 이 방식 덕분에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널리 암송되고 필사되며 후대까지 살아남았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 카시오페이아 같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별자리 이름으로 굳어진 것도 이 시기의 정리 작업에 크게 빚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 별자리

에우독소스와 아라토스가 전달한 하늘은 이후 한 사람의 손에서 다시 한번 체계화된다. 서기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자신의 저작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별자리를 48개로 정리하고 각 별자리에 속한 별의 좌표와 등급을 기록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목록에는 약 1,022개의 별이 담겨 있으며, 이는 그보다 3백 년 앞선 히파르코스의 관측 자료를 상당 부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온자리, 큰곰자리, 전갈자리처럼 지금도 쓰이는 이름 대부분이 이 48개 목록에서 나왔다. 이 48개 별자리는 이후 무려 1,400년 넘게 서양 천문학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 프톨레마이오스가 관측할 수 있었던 지중해 위도의 하늘 범위를 벗어나는 별자리는 애초에 목록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반구 깊은 곳의 하늘은 그가 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창가 나무 탁자에 펼쳐 둔 낡은 별자리 지도, 왕관 쓴 여인과 백조 그림 주위로 별이 점으로 찍혀 있다
창가 나무 탁자에 펼쳐 둔 낡은 별자리 지도, 왕관 쓴 여인과 백조 그림 주위로 별이 점으로 찍혀 있다

 

유럽 항해가들이 채운 남쪽 하늘

프톨레마이오스가 보지 못한 하늘은 그럼 누가 채웠을까.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유럽인들이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항해하기 시작하자, 그곳의 낯선 별들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새로 시작됐다.

첫 시도는 1603년 독일 천문학자 요한 바이어가 출간한 성도집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에서 나타난다. 바이어는 네덜란드 항해사 피터르 케이제르와 프레데릭 더 하우트만의 항해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남쪽하늘자리 12개를 새로 실었다. 이후 18세기 중반, 프랑스 천문학자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가 희망봉에서 약 4년간(1750~1754년) 직접 관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14개 별자리를 추가로 만들었다. 라카유는 화학로자리, 조각실자리, 망원경자리, 현미경자리처럼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기술 도구를 별자리 이름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와 확연히 다른 접근을 보였다.

삼각모를 쓴 남자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은하수 뜬 밤하늘을 황동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곁에 등불과 지도가 놓여 있다
삼각모를 쓴 남자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은하수 뜬 밤하늘을 황동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곁에 등불과 지도가 놓여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별자리 창작이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관측 활동 그 자체의 기록이 됐다는 점이다. 라카유가 새로 그은 별자리들은 신화적 서사 대신 그가 서 있던 관측소의 시대적 배경, 즉 계몽주의 과학 기구들을 하늘에 새긴 결과였다.

88개로 확정되기까지 — IAU와 경계선

그런데 여기서 통념과 다른 지점이 나온다.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와 이후 여러 천문학자가 저마다 다르게 추가한 별자리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통일된 기준이 없었다. 학자마다 별자리의 경계를 다르게 그렸고, 심지어 같은 하늘 영역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 혼란을 정리한 것이 1922년 국제천문연맹(IAU)의 결정이다. IAU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던 별자리들을 검토해 88개를 공식 목록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이름만 확정했을 뿐 정확한 경계선은 없었다. 그 경계를 실제로 그은 사람은 벨기에 천문학자 외젠 들포르트로, 그는 1930년 적경·적위를 기준으로 88개 별자리의 경계를 수학적으로 확정했다. 오늘날 어떤 별이 "어느 별자리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것은 신화나 전통이 아니라 들포르트가 그은 이 좌표 경계선 덕분이다.

황동 스탠드와 책장이 있는 서재 책상에 펼쳐진 원형 성도, 검은 원 안에 별과 별자리 선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황동 스탠드와 책장이 있는 서재 책상에 펼쳐진 원형 성도, 검은 원 안에 별과 별자리 선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결국 "별자리는 누가 만들었나"라는 질문에는 최소 네 겹의 답이 있다. 실용적 필요로 하늘을 나눈 메소포타미아의 이름 없는 관측자들, 그것을 시로 엮어 전달한 아라토스, 48개로 체계화한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남은 빈 하늘을 채우고 마지막 경계선을 그은 바이어·라카유·들포르트까지. 지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찾는 별자리 하나하나에는 이 모든 시대의 손길이 겹쳐 있다.

별자리를 이루는 무수한 별과 은하수가 작은 오두막으로 이어진 흙길과 침엽수 실루엣 위로 펼쳐진 밤하늘
별자리를 이루는 무수한 별과 은하수가 작은 오두막으로 이어진 흙길과 침엽수 실루엣 위로 펼쳐진 밤하늘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가장 오래된 체계적 별자리 기록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문서 MUL.APIN(기원전 약 1000년경 정리, 그 이전 관측 전통 반영)이다.
  • 그리스에서는 에우독소스의 정리를 바탕으로 아라토스가 《파이노메나》(기원전 약 270년경)에 별자리를 시로 담아 후대에 전했다.
  •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2세기)에서 별자리를 48개로 확정하고 약 1,022개 별의 좌표를 기록했다.
  • 남반구 별자리는 바이어(1603년, 12개)와 라카유(1750년대, 14개)가 새로 추가했다.
  • IAU가 1922년 88개 별자리를 공식화했고, 들포르트가 1930년 정확한 경계선을 확정했다.

FAQ

Q. 별자리 이름은 왜 대부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일까?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48개 별자리 중 다수가 아라토스의 《파이노메나》를 거친 그리스 신화 전통을 따랐기 때문이다. 다만 이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식 명칭에서 출발한 경우도 있다.

Q. 라카유가 만든 별자리는 왜 신화가 아니라 도구 이름일까?
라카유가 활동한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로, 그는 신화 대신 자신이 실제로 사용하던 과학·항해 기구(망원경, 현미경, 시계 등)를 별자리 이름으로 삼았다. 이는 이전 시대 별자리 명명 전통과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Q. 동아시아에는 서양과 다른 독자적 별자리 체계가 있었을까?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는 하늘을 3원(垣) 28수(宿) 체계로 나눠 서양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리했으며, 이 체계는 왕조 기록과 천문도에 독립적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 체계는 서양의 88개 별자리와는 별개의 전통이라 이 글에서 다룬 과정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Q. 지금도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 수 있나요?
공식적으로는 어렵다. 1922년 IAU가 88개로 목록을 확정하고 1930년 경계선까지 고정한 이후, 새 별자리를 추가하거나 기존 경계를 바꾸는 절차는 사실상 닫혀 있다.

참고자료

  •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The Constellations" (공식 88개 별자리 목록 및 명칭)
  • Hermann Hunger, David Pingree, 《MUL.APIN: An Astronomical Compendium in Cuneiform》 (Archiv für Orientforschung, Beiheft 24, 1989)
  • Claudius Ptolemy, 《Almagest》 (Books VII–VIII, 48개 별자리 및 별 목록)
  • Nicolas-Louis de Lacaille, 《Coelum Australe Stelliferum》 (1763)
  • Eugène Delporte, "Délimitation scientifique des constellations" (IAU, 1930)
반응형

'[PROLOGUE] 별의 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자리와 계절  (0) 2026.08.09
별자리와 신화  (1) 2026.08.09
왜 별자리는 88개일까?  (0) 2026.08.09
인간은 왜 별을 연결했을까?  (1) 2026.08.09
밤하늘은 왜 인류 최초의 도서관이 되었을까?  (0)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