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가 이름 없이 남겨둔 별들이 1592년 플란시우스의 벽지도에서 '노아의 비둘기'가 되기까지. 오리온에서 쫓겨난 별 뮤 비둘기자리, 구상성단 NGC 1851, 한국에서 찾는 법까지 정리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큰개자리 아래쪽에 흩어진 별 몇 개를 별 목록에 적어 넣고도, 그 별들에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 《알마게스트》에서 이 별들은 어느 별자리의 몸에도 속하지 않는 **'형태 없는 별'**로 남았다.
이 별들이 날개를 얻기까지는 1,400년 가까이 걸렸다. 날개를 그려준 사람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목사였고, 그가 떠올린 새는 그리스 신화가 아닌 전혀 다른 책에서 날아왔다. 그런데 이 작은 별자리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정작 이름이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달려온 별 하나에 숨어 있다.
목차
- 프톨레마이오스가 비워둔 하늘
- 1592년, 플란시우스의 벽지도에 날아든 비둘기
- 노아의 비둘기인가, 아르고호의 비둘기인가
- 팩트와 와즌 - 비둘기자리를 이루는 별들
- 오리온에서 쫓겨난 별, 뮤 비둘기자리
- 구상성단 NGC 1851 - 두 가족이 사는 별의 도시
- 동아시아 하늘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
- 한국에서 비둘기자리를 찾는 법
-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FAQ
- 참고자료
프톨레마이오스가 비워둔 하늘
고대 그리스인은 왜 이 별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답은 별의 밝기와 위치에 있다. 비둘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도 2.6등급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3~4등급이다. 게다가 이 별들은 지중해 세계에서 보면 남쪽 지평선 가까이 낮게 떠올랐다가 금세 진다.
고대의 별자리는 밝고 눈에 띄는 별을 중심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바로 위에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를 품은 큰개자리가 있었고, 그 아래 희미한 별들은 큰개자리의 '부속 별' 정도로 취급됐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런 별들을 목록에는 올리되 별자리 그림 바깥에 두었는데, 오늘날 비둘기자리의 밝은 별들이 바로 그 '형태 없는 별' 가운데 일부였다.
지금의 비둘기자리는 면적 약 270제곱도로, 88개 별자리 가운데 54번째 크기다. 아주 작지도, 크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하늘 조각이 1,000년 넘게 빈칸으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1592년, 플란시우스의 벽지도에 날아든 비둘기
그 빈칸을 채운 사람은 페트루스 플란시우스(1552~1622)였다. 플랑드르 출신으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개신교 목사이자, 네덜란드 동인도 항해를 준비하던 시대의 손꼽히는 지도 제작자였다.
1592년 그는 대형 세계 벽지도를 펴내면서 지도 귀퉁이에 작은 천구도(평면 성도)를 함께 그려 넣었다. 비둘기자리는 바로 이 작은 천구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큰개자리의 '형태 없는 별'을 따로 떼어내 독립된 그림으로 만든 것이다. 이후 1594년의 더 작은 세계지도와 초기 네덜란드 천구의에도 같은 비둘기가 등장한다.

다만 '언제 공식 별자리가 되었는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한다. 요한 바이어의 성도 《우라노메트리아》(1603)에도 비둘기가 실렸지만, 별자리로서의 지위를 두고는 1624년 야코프 바르치의 성도를 꼽는 견해와 1679년 프랑스의 아우구스탱 루아예의 별 목록을 꼽는 견해가 갈린다. 18세기에는 라카유가 비둘기자리를 정식 별자리로 올리고 별 목록을 만들었고, 1922년 국제천문연맹(IAU)이 88개 별자리를 확정할 때 그대로 포함됐다.
노아의 비둘기인가, 아르고호의 비둘기인가
플란시우스가 붙인 원래 이름은 '콜룸바'가 아니라 콜룸바 노아키(Columba Noachi), 곧 '노아의 비둘기'였다. 라틴어 columba는 비둘기라는 뜻이고, 지금의 이름은 이 긴 이름에서 '노아의'가 떨어져 나간 형태다.
출처는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구약성경 《창세기》 8장이다. 대홍수가 끝나갈 무렵 노아는 방주에서 비둘기를 내보낸다. 처음에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돌아왔고, 이레 뒤 두 번째로 날려 보내자 저녁 무렵 부리에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왔다. 물이 빠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다시 이레 뒤 날려 보낸 비둘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목사였던 플란시우스에게 이 장면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는 1613년 천구의에서 바로 옆의 거대한 배 별자리 아르고호를 '노아의 방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방주와, 방주에서 날아오른 비둘기를 하늘에 나란히 세우려 한 셈이다.
그런데 이 배가 아르고호라는 점 때문에 다른 해석도 생겼다.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 2권에는, 이아손 일행이 흑해 입구에서 서로 부딪치는 바위 심플레가데스를 통과하기 전에 비둘기를 먼저 날려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비둘기는 꼬리 깃털만 잃고 빠져나갔고, 배도 그 뒤를 따라 간신히 통과했다. 그래서 비둘기자리를 '아르고호의 비둘기'로 읽는 해석이 있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은 연결이고 플란시우스의 원래 의도는 노아 쪽이었다.
가장 밝은 별의 이름 **팩트(Phact)**가 아랍어 '파키타(산비둘기)'에서 왔다는 점은 묘한 우연처럼 보인다. 다만 이 이름은 원래 백조자리 쪽 별에 쓰이던 것이 나중에 이 별로 옮겨 왔다는 설명이 있어, 플란시우스보다 앞선 '비둘기 별'의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팩트와 와즌 - 비둘기자리를 이루는 별들
신화도, 아주 밝은 별도 없는 별자리라면 별 자체는 평범할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비둘기자리의 두 고유명 별은 모두 2016년 IAU 항성명 작업그룹(WGSN)이 공식 이름으로 승인한 별이다.
| 팩트(α) | 2.6등급 | 약 261광년 | 매우 빠르게 자전하는 청백색 Be형 별 |
| 와즌(β) | 3.1등급 | 약 87광년 | 초속 100km 넘게 움직이는 주황색 거성 |
| 뮤(μ) | 5.2등급 | 약 1,300광년 | 맨눈으로 보이는 드문 O형 별, 폭주성 |
팩트는 적도 부근의 자전 속도가 초속 170km를 넘는다. 이렇게 빨리 돌면 별이 납작해지고, 적도에서 흘러나온 가스가 원반을 이루며 독특한 방출선을 만든다. 이런 별을 Be형 별이라고 부른다.
와즌은 아랍어로 '무게'를 뜻한다. 크기는 태양의 약 12배인 비교적 작은 거성이지만, 우주 공간을 초속 약 103km로 가로지르고 있어 주변 별들과 움직임이 확연히 다르다. 이 두 별 주변으로 4등급 안팎의 엡실론·감마·델타·에타 별 등이 이어지며 날개를 편 비둘기 모양을 이룬다.
오리온에서 쫓겨난 별, 뮤 비둘기자리
표의 마지막 줄에 있는 별은 밝기만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5.2등급이다. 그런데 이 별의 고향은 비둘기자리가 아니라, 하늘 반대편이라 해도 좋을 만큼 떨어진 오리온성운이다.
뮤 비둘기자리는 표면 온도가 매우 높은 O9.5형 별로, 맨눈으로 보이는 O형 별 자체가 드물다. 1961년 천문학자 아드리안 블라우는 이 별과 마차부자리의 AE 마차부자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유난히 빠르게 달아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두 별은 지금도 상대 속도 초속 200km 이상으로 멀어지는 중이다.
두 별의 경로를 거꾸로 되감으면 한 지점에서 만난다. 2000년 호헤르베르프·더브라위너·더제이우는 히파르코스 위성의 정밀 측정으로 두 별과 오리온자리의 쌍성 이오타 오리오니스의 궤적이 약 250만 년 전, 막 태어나던 트라페지움 성단에서 교차한다는 것을 보였다. 쌍성 두 쌍이 가까이 스치며 짝을 바꾸었고, 그 충격으로 원래 짝이던 뮤 비둘기자리와 AE 마차부자리가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는 설명이다.

250만 년은 지구에서 사람속(Homo)의 초기 조상이 처음 나타나던 무렵과 비슷한 시간 규모다. 그 사이 두 별은 서로 약 1,600광년 떨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한쪽은 겨울 하늘 북쪽의 마차부자리에, 다른 한쪽은 남쪽 지평선 가까운 비둘기자리에 자리 잡았다. 노아의 비둘기가 방주를 떠났듯, 이 별도 자기가 태어난 성운을 떠나온 셈이다.
구상성단 NGC 1851 - 두 가족이 사는 별의 도시
비둘기자리의 남서쪽 구석, 밝은 별이 거의 없는 빈 하늘에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다. 1826년 5월 29일 스코틀랜드 출신 천문학자 제임스 던롭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한 구상성단 NGC 1851(캘드웰 73)이다.
거리는 약 3만 9,500광년, 밝기는 7.3등급, 겉보기 지름은 약 11분으로 보름달 폭의 3분의 1쯤 된다. 나이는 약 92억 년으로 추정되며, 우리은하의 구상성단 가운데서도 중심부가 가장 빽빽하게 뭉친 축에 든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단 안에 성질이 뚜렷이 다른 두 무리의 별이 함께 산다는 것이다. 구상성단의 별은 보통 함께 태어나 비슷한 성질을 갖는데, NGC 1851에서는 준거성들이 두 갈래로 나뉜다. 2017년 인도 천문위성 아스트로샛의 자외선 관측도 두 집단이 각자의 이력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원인을 두고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작은 성단 두 개가 합쳐졌다는 설명이 있고, 성단을 둘러싼 넓은 별의 헤일로를 근거로 우리은하에 흡수된 왜소은하의 중심핵이 남은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동아시아 하늘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
서양에서 비둘기 한 마리였던 이 별들을 동아시아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보았다. 중국 전통 별자리 체계에서 비둘기자리의 별들은 남방주작에 속한 정수(井宿) 영역에 들어간다.
팩트(α)와 엡실론(ε)은 장인(丈人), 곧 어른이나 할아버지를 뜻하는 별이다. 람다(λ)와 와즌(β)은 자(子), 아들이고, 카파(κ)와 세타(θ)는 손(孫), 손자다. 서양이 성경 속 새 한 마리를 그렸다면, 동아시아는 같은 별에서 3대가 나란히 선 가족을 읽어낸 것이다.
오리온성운에서 쫓겨난 뮤 비둘기자리는 여기서도 외톨이다. 이 별은 정수가 아니라 서방백호의 **삼수(參宿)**에 속하는 **시(屎)**라는 별자리인데, 별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다. 혼자 떨어져 나온 별이 동양에서도 홀로 선 별자리로 기록된 것은 우연이지만, 기억해 둘 만한 대목이다.
한국에서 비둘기자리를 찾는 법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이 비둘기를 볼 수 있을까? 볼 수는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비둘기자리는 적위 약 -27도에서 -43도 사이에 걸쳐 있어 한국에서는 남쪽 지평선 위로 낮게만 떠오른다.
시기는 12월부터 3월까지의 저녁이다. 1월 중순 밤 10시 무렵, 2월 초순이면 저녁 9시 무렵에 정남쪽에서 가장 높이 뜬다. 이때 팩트의 고도는 서울에서 약 18도, 제주에서 약 22도다. 별자리 남쪽 끝의 별들은 서울 기준 고도 10도 안팎이라 지평선 근처 건물·산·연무에 가려지기 쉽다.
찾는 순서는 오리온자리에서 시작한다. 오리온의 허리띠 세 별 아래로 내려가면 오리온 발치에 웅크린 토끼자리가 있고, 토끼자리 바로 아래에서 홀로 빛나는 2등급대 별이 팩트다. 시리우스를 기준으로 하면 시리우스의 오른쪽 아래(남서쪽)에 해당한다.

관측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남쪽 지평선이 탁 트이고 광공해가 적은 곳이 필요하므로, 남해안이나 제주처럼 위도가 낮고 바다 쪽으로 시야가 열린 장소가 유리하다. 구상성단 NGC 1851은 서울에서 고도가 약 12도에 그쳐 쌍안경으로 찾기도 쉽지 않으니, 제주에서 맑고 건조한 겨울밤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팩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9도 떨어진 곳을 쌍안경으로 훑으면 작고 뿌연 빛 덩어리로 보인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 비둘기자리의 밝은 별들은 프톨레마이오스가 큰개자리의 '형태 없는 별'로 남겨둔 별들이었다.
- 1592년 페트루스 플란시우스가 세계 벽지도의 천구도에 처음 그렸고, 원래 이름은 '노아의 비둘기(Columba Noachi)'였다.
- 유래는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창세기》 8장이며, 아르고호의 비둘기와 연결하는 시각은 후대 해석이다.
- 뮤 비둘기자리는 약 250만 년 전 오리온성운의 트라페지움 성단에서 튕겨 나온 폭주성이다.
- 구상성단 NGC 1851에는 성질이 다른 두 별 무리가 공존하며, 그 기원은 아직 논쟁 중이다.
- 한국에서는 12월~3월 저녁 남쪽 지평선 낮은 곳에서 볼 수 있고, 남해안·제주가 유리하다.
FAQ
Q. 비둘기자리는 처음부터 '비둘기자리'라고 불렸나요? 아니다. 플란시우스가 붙인 이름은 '노아의 비둘기'를 뜻하는 콜룸바 노아키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노아의'가 빠진 콜룸바로 굳었다. 한국어 이름 '비둘기자리'는 이 라틴어 이름을 옮긴 것이다.
Q. 올리브 잎을 문 '평화의 비둘기'와 관계가 있나요? 뿌리는 같다. 평화의 비둘기 상징도, 비둘기자리의 원래 이름도 《창세기》에서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온 비둘기에서 나왔다. 다만 비둘기자리가 평화를 상징하려고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Q. 뮤 비둘기자리는 맨눈으로 보이나요? 5.2등급이라 어두운 곳에서는 맨눈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평선 가까이 낮게 떠서 대기에 빛이 많이 흡수되므로, 쌍안경을 쓰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Q. 비둘기자리는 남반구 별자리인가요? 천구의 적도보다 남쪽에 있어 남천 별자리로 분류되지만,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중위도에서도 겨울철에 대부분을 볼 수 있다. 남반구에서는 머리 위 높이 떠서 훨씬 보기 쉽다.
참고자료
-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The Constellations - Columba (별자리 경계 및 공식 명칭)
- IAU Working Group on Star Names (WGSN), IAU Catalog of Star Names - Phact, Wazn
- Ian Ridpath, Star Tales - Columba (플란시우스의 1592년 벽지도와 Columba Noachi 명칭)
- Encyclopaedia Britannica, Columba (기원 연도에 관한 여러 견해)
- R. Hoogerwerf, J. H. J. de Bruijne, P. T. de Zeeuw (2000), "The Origin of Runaway Stars",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 A. Gualandris, S. Portegies Zwart, P. P. Eggleton (2004), "N-body simulations of stars escaping from the Orion nebula",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350, 615
- SEDS, Milky Way Globular Clusters - NGC 1851 (발견 기록·거리·밝기)
- ISRO, AstroSat Picture of the Month (November 2017) - NGC 1851: Two star families in one Globular Cluster
- 《창세기》 8장 (노아의 비둘기)
-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아르고나우티카》 2권 (심플레가데스를 통과하는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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